지평 5대
한기석 장인 소개

장인의 삶

왕실 백자 - 그렇게 시작한 200년 가업 그리고 다시 30년의 작업.

 1대 한 영석 장인을 시초로 하는 지평도예의 역사는 조선 왕실과 관련 깊다. 이전의 선조들도 도자 제작을 업으로 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근거가 남은 것은 한 영석 장인부터 이다. 한 영석 장인은 조선왕실이 경기도 광주에 설치한 사옹원 분원의 도편수로 도편수는 관요 최고 기술 장인을 부르는 말로 도편수 도변수 등으로 불렸다.

 2대 한 치수 장인은 조선말기에 도편수에 오르는데 분원의 해체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이왕직미술품제작소와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장인으로 일하며 작업을 지속했다.

1930년대 지평도예
전통목물레

 3대 한 태석 장인은 해방 후 격동기 대한민국 서울의 한국미술품제작소에서 백자재현작업을 한다. 한국미술품제작소는 미국의 원조와 정부지원으로 운영 되었는데 해강 유근형, 지순택 등 1세대 전승도예작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였다.

 4대 한 창호 장인은 경기도 이천으로 내려와 여러 곳의 전승도자공방에서 작업 도자성형을 담당하는 대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60년대 초반의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여건으로 도자 공방을 만들지는 못하였고, 수 십 곳의 영세공방에서 물레대장으로 일을 하며 기술을 전승한다. 97년이 되어 집안의 도자역사가 시작된 경기도 광주에 지평도예를 설립 한다.

 5대 한 기석 장인이 도자 작업을 전승하겠다는 것은 어떠한 명백한 목표나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작은아버지, 사촌 등 집안 모두가 도자작업을 하고 있다는 영향 그리고 어린 시절 가난함을 벗어나고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가업의 계승이었다. 그렇게 가업을 전승한 후 제작기술을 배우고자 많은 공방에서 수련을 한다.

 당시에는 조선백자를 재현함에 있어 외적인 재현을 중심으로 태토, 유약, 안료 등의 연구가 이루어진 시기로 제작과정 전반을 익히는 수련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이후 경기도 광주, 이천에서 도자 성형작업을 하는 대장으로 10여년 이상 일을 한다.

가마앞에서, 한기석 장인

 1997년 지평도예를 설립했으나, 외환위기로 공방의 기틀을 다지는데 15년이 흐른다.
그러한 그의 작업은 탄탄한 기능을 바탕으로 빛을 내게 되는데 동아공예대전을 통해서였고, 작가로써 상업적 성공은 4년 뒤 세계도자기 엑스포를 기점으로 한다.

 첫해 도자기 엑스포를 통해 젊은 작가로는 처음으로 작품 1점이 삼천 만원에 팔렸고,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매입 되는 위업을 달성한다. 그런 그의 작업은 전승도자를 넘어 동시대 작가로 발 돋음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그 의 그런 생각은 2007년 제 37회 대한민국 공예품대전에서 국무총리 상을 수상하며 인정을 받았고, 100여회 이상 공모전 수상과 190회의 그룹전을 거치며 경기도 광주를 대표하는 백자작가로 자리 매김 한다.

 국내 전시 및 수상과 함께 해외에서의 활동을 전개 한다. 싱가포르 국영방송을 통해 한국 전통도자 제작과정을 선보였고, 세계관광장관회의, 심양국제박람회, 독일 도르트먼트대학 초대전 등에 참여 하였고 지금도 연 1회 이상 해외 전시를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에는 광주왕실도자기사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과 함께 지역도자산업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사장으로써 광주왕실도자전을 개최 하였고, 광주백자공모전, 광주왕실도자기 축제 등을 4년간 안정적으로 개최한다.

 퇴임 이후 대통령국빈선물, 중국국가주석 국빈선물, 일본 문부성, 대한민국 외교부, 국회 사무처, 국립박물관 선물 등 광주 백자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가마 속 열기를 견디듯 - 250년의 역사는 다시 이어진다.

가족사진

 이러한 전통 있는 도자 가문임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지평도예의 전통백자가 역사 속 격동기와 해방, 그리고 6.25동란 등의 격동기를 거치며 전승기록들이 보존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하재일기, 조선총독부기록물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선조들로 보이는 장인들의 이름이 보이고 있어 당대 타 기록과 비교하여 정확한 전승계보의 결(結)을 완성 할 것이다.

 현재는 한 기석 장을 아들 한 민우가 6대째 전통을 이어가고자 수련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전통 도자 문화유산은 20세기 산업화 속에 과거의 산물로 취급 받아 왔지만, 세월이 흐르고 희소성이 덧붙여져 장인정신에 대한 재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우매한 자들의 발언은 전승도자작가들의 전승 의욕을 저하 시키고 있으며, 과거의 산물이라며, 전통과 전승을 구분하는 터무니없는 일을 하고 있다. 전통과 전승의 의미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에게 근 현대 도자사는 잊혀지고 있다.

전통과 전승은 어느 한 쪽도 부정 받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지평도예의 생각이다.
경기도 도자공예 담당기관 직원의 말을 빌리면 그는 전승도자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젠 몇 대째, 몇 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는 한 켠 에 잘 간직해 두고....>

가마앞에서, 한기석 장인
한기석 장인

 우리의 250년 외길을 걸어온 가업이 전통문화와 공예정신에 무지한 무식한 글쟁이의 글 한 줄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든 어려움을 이겨 낼 것이고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며,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받은 마음을 소중히 생각하며 가업을 더욱 굳건히 할 것이다.

 지평도예는 전통도자기술에 기반을 두고 전통을 표방하기보다, 형식 너머를 보고자 한다. 이것이 장인정신이고, 지평도예가 조선왕실 백자를 만드는 이유이기 때문이다.